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브란트 (문단 편집) == 본격적인 만행 내역 == '''[[https://en.m.wikipedia.org/wiki/Nazi_human_experimentation|나치 독일의 생체실험]]''' 브란트는 1939년 10월 [[T-4 프로그램]]의 감독관으로 임명된다. 임명된 이후 한 일은 유대인 및 정신질환자, 장애인을 대상으로 안락사 실험었다. 그는 불운한 생명체에게 '''자비로운 죽음을 부여한다'''는 목적으로 실시했고, 자신이 이들에게 구원자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정의였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스를 이용한 죽음이 가장 인도적인 방법이라면서 적극적으로 가스 학살을 지지했고, 실험자들을 강제로 살균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을 가스실에 밀어넣은 후 살해했으나 나중에는 악질적이게도 생체 실험을 하고 실험 성과를 얻은 다음에 죽였다. 심지어 몰래 1차 대전 참전자와 2차 대전 참전자 중 중증 부상으로 영구적 장애를 얻은 이들 몇몇을 대상에 포함시켜 생체실험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명령으로 T-4 프로그램은 중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T-4 프로그램에 관여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고, 안락사 프로그램이 중지된 이후 라벤스브뤽(Ravensbrück)과 아우슈비츠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와 나츠바일러(Natzweiler) 수용소를 비롯한 수많은 강제수용소에서 직간접적으로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을 지원하고 참여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관여한 생체실험을 요약하면 이렇다. * 냉동 실험 : 나치의 과학자들은 [[군함]] 승조원들이나 [[항공기]] 승무원들이 탈출 후 착수할 경우 얼마나 차가운 바다에서 버틸 수 있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빠른지를 연구하기 위해 냉동 실험을 실시했는데 카를 브란트는 이 실험을 지원했다. 실험을 한다는 목적으로 얼음물이 든 탱크에다가 피해자들의 옷을 강제로 다 벗긴 다음에 탱크에 집어 넣은 후 얼마만에 사람이 [[동사|얼어죽는지]]를 알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얼음물에 넣어두어 피해자들은 온몸이 얼어 사망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거의 얼어죽기 직전까지 실험을 했다가 그들을 탱크에서 꺼낸 다음 몸을 녹이는 실험을 했는데 이 때 온갖 미친 방법들을 동원했다. 대표적인 것이 여자들이 몸을 녹이는 방법 중에는 [[강간]]을 이용한 해동 방법도 실험하여 수많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했다. 다만 이 실험에 참여한 남성 피실험자들 역시 전쟁 포로들로서 피해자의 입장이지 여성들을 '강간'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얼음물 속에서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여성을 강간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도 않았다. 또한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명목상으로는 '자원자'였다. 이들이 자원한 이유는 그들이 원래 있던 수용소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에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실험에 자원한 것이었다. 즉 남성에 의한 강간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의한 강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행위를 통한 해동방법은 실험에 참가한 대다수 의사들도 반대했던 방법인데, [[하인리히 힘러]]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한다. 물론 실험 결과 이 방법은 '비실용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참고로 감압과 냉동실험의 담당자는 '[[지크문트 라셔]]'라는 의사였다. 이 인물은 부인이 48세의 나이로 자식 3명을 낳은 일로 힘러의 신임을 얻어 T-4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세 자식이 부인이 낳은 것이 아니라 [[고아원]]에서 빼돌린 것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국 이들 부부는 [[슈츠슈타펠]]에 의해 수용소로 보내져 처형당했다. * 말라리아 실험 : [[말라리아]]에 대한 위험성과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요제프 멩겔레]]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약 천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실험했고, 희생자들은 사망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살아남더라도 죽을 때까지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 [[겨자 가스]] 실험 : 나치는 전쟁 당시에 겨자 가스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와 나츠바일러(Natzweiler) 수용소에서 피해자들을 겨자 가스에 노출시킨 후에 상태를 보았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멀쩡했으나 가스에 노출된 후 24시간 안에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 자극 증세가 나타나고, 노란색 액체로 가득찬 거대한 수포가 노출된 부위에 생겼다. 겨자 가스 기체는 면이나 모 같은 일반적인 천을 간단하게 통과하기 때문에 노출 당시에 옷으로 가리고 있던 부위라도 수포가 생겼으며, 안구에 노출되었을 시에는 처음에는 따갑다가 [[결막염]]을 일으키고, 눈꺼풀이 부어올라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고농도의 가스를 흡입한 경우 호흡기의 출혈과 수포를 일으켜 점막에 손상을 주고 [[폐수종]]을 일으켰으며, 겨자 가스에 노출되어 입는 환부 부상은 화학물질로 인한 화상으로, 노출된 가스 농도에 따라 1도에서 2도 [[화상]], 심한 경우에는 3도 화상까지 이르게 되었다. 심한 화상(신체 면적의 50%를 넘는 화상)은 치명적이며 환자가 며칠이나 몇 달 후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겨자 가스에 노출되었다가 생존한 자는 겨자 가스의 돌연변이 유발과 발암성 때문에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 [[독극물]] 실험 : 이 실험은 다양한 독극물에 대한 효능을 알기 위해 실험했다. 실험자들은 엄청난 양의 독을 투입받아 많은 이들이 사망했으며 음식에 독을 타서 실험자들에게 몰래 먹이기도 했다. 또한 독을 이용해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실험했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독을 바른 총알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질산염을 첨가한 총알을 개발했는데, 이 총알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격 실험을 자행하여 수많은 포로들을 죽게 만들었다. 실험체가 된 포로들은 독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거나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고, 그나마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백신이랍시고 괴상한 물질들을 투입시킨 결과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 전염병 황달 실험 : 여러 가지 질병들에 대한 치료와 관찰을 위해 시작되었다. 카를 브란트는 라벤스뷔크에서 피해자에게 질병과 황달액을 강제로 투입시킨 후 실험자들이 죽을 때까지 방치하거나 백신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온갖 약물을 투여했다. 또한 발데마어 호펜이 주도적으로 실시한 발진티푸스를 비롯한 [[황열병]], [[천연두]], [[파라티푸스]], [[콜레라]]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바이러스의 위험성과 치료법, 백신 개발법을 개발하기 위해 온갖 약물을 투여하는 실험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실험자의 90% 이상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안다고 죽을 때까지 환자를 방치하거나 바이러스를 위한 백신 개발을 목적으로 온갖 괴상한 물질을 투입하여 피해자들이 처참히 사망하게 만들었다. * 바닷물 주사 실험 : 이 실험은 공군의 조종사와 해군 선원들이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 실행된 것으로 피해자들을 음식과 물을 먹지 못하도록 강제로 막은 후 오로지 화학약품으로 처리된 바닷물만 마시게 했다. 결국 장기가 엄청나게 손상되었고 피해자들은 고통 끝에 사망했다. * 근육 및 신경 재생과 뼈 이식 실험 : 이 실험의 목적은 외과 시술의 발전이라는 목적으로 행해졌는데 육군의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자행되었다. 이 실험은 피해자들에게 근육과 뼈, 그리고 피부나 팔 다리와 같은 부분들을,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마취도 하지 않고 잘라낸 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잘라낸 부위를 이식하는 미치광이 실험이었다. 희생자들은 서로 다른 혈액형 때문에, 혹은 실험 중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했다. 개중 아주 운이 좋으면 몸의 일부가 절단되는 정도였지만 심한 사람들은 사지가 갈가리 찢기기까지 했으며 평생동안 몸의 일부가 잘린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 술폰아미드 실험 : 이 실험은 술폰아미드라는 특별한 화학 물질이 인체에 어떠한 효과를 미치는지 실험하기 위해서 실시되었다. 술폰아미드는 영어식으로 설폰아마이드라고도 읽는데, 항균 작용이 있는 물질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허구헌날 상처에 뿌리는 하얀 가루인 '설파제'가 바로 이것이다. [[테오도어 모렐]]이 히틀러에게 처방한 약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설파제 자체가 딱히 해로운 물질은 아니다. 문제는 게프하르트는 이 실험을 통해 "술폰아미드가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술폰산의 다른 화합물'''을 써서 실험했다. 그 이유는 [[카를 게프하르트]] 항목 참조. 술폰아미드를 사용한 실험자들은 희생자들에게 우선 다양한 종류의 박테리아, 예를 들어서 [[연쇄상구균]] 가스 괴저균 또는 [[파상풍균]] 등과 같은 물질들을 투입하였다. 실험의 현실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유리조각이나 철 조각, 나무 조각으로 실험 대상자들이 상처가 날 때까지 비비다가 상처가 나면 그 상처에 술폰아미드를 투입하여 그 효과를 본 것이었다. 물론 이 술폰아미드에는 다른 화합물이 섞여 있었기에 약품을 상처에 투입하자 그 부위가 썩어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런 실험을 할 당시에 카를 브란트는 아이와 노인들도 대상으로 하여 가스나 약물을 주입시켰고 실험 대상들을 독일을 위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식충이들로 비유했다. 훗날 T-4 프로그램이 시민들의 항의로 중단되자, 장애인들이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일부러 병균을 주입하거나 일부러 며칠이 넘는 시간 동안 굶겨 죽게 만들었다. 심지어 실험 당시에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는데도 냉정하게 무시했으며, 어떤 포로가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D%B8%EC%B2%B4%EC%8B%A4%ED%97%98-%EC%9E%94%ED%98%B9%EC%82%AC-%ED%9E%88%ED%8B%80%EB%9F%AC%EC%9D%98-%EC%9D%98%EC%82%AC%EB%93%A414|"그냥 총살형으로 죽여 달라. 무엇 하려고 가스실에 집어넣고 구차하게 죽이려고 하느냐”]]고 외쳤는데, 포로들을 실험 성과도 없이 그냥 죽이기 싫어서 반드시 성과를 얻은 후에 죽였다고 한다. 카를 브란트는 포로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없게 만들어서 그들에게 더욱 절망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가스실에는 각종 이상한 약물이 넘쳐났고, 얼굴이 흉측하게 된 사람, 몸이 썩어들어 가는 사람, 몸이 녹아가는 사람 등 등의 각종 기괴한 모습의 사람들 또는 시신이 가스실에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의 내용은 아마도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전후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면 [[끔살|무슨 일이 있을지]]를 뻔히 알았던 관계로 철저하게 자료들을 파기해 버렸고, 생존자들을 죽여버렸기 때문에 많은 사실들이 묻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죄들이 전부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러한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이 하나하나 해외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악질적인 생체실험은 나치의 전쟁범죄로 분류되어 전후 생체실험 혐의로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의사에 대한 재판의 명칭이 'Karl Brandt [[et al.]](카를 브란트 등.)'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